작가 사후 70년이 지난 문학은 ‘퍼블릭 도메인’, 즉 저작권이 소멸한다. 일전에 도서 목록에 넣어둔 [이상 문학 전집]이 기한 만료로 사라진 후, 전집을 구매하기 전에 괜스레 그의 작품 세계와 삶을 들여다보았다. 틈틈이, 시간이 날 때, 주로 밤과 새벽 사이, 공간도 마음도 거리도 대체로 가장 숨을 죽이고 있을 무렵에, 왠지. 날개, 난해한 시, 요절한 천재, 수능 공부할 때 얼핏 나온 이름과 박제된 천재로 죽은 그보다 훌쩍 더 살게 된 시점에서 보면 무엇인가 달라질지 모른다고 살며시 생각했다.

말장난 같으나, 실제 동경 東京을 동경한 이상은 삶의 최후를 도쿄에서 쓸쓸하게 마무리했다고 알려졌다. 그런 그가 아직 이 도시에 복잡다단한 생각을 가진 무렵 중간 회고 같은 글이 바로 [동경]이다. 1939년 3월, 이상은 문예지 [문장]에 도쿄 기행의 감상을 수필로 적었다. 그는 친일파도 부역자도 아니었으나, 일제강점기, 적국의 수도에 꽤 커다란 열망을 품고 있었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알던 친구들과 새로이 안 남들과 거리에서 거리를 오가며, 낮과 밤을 휘저으며 남긴 글은 어쩐지 200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남의 도시에 느낀 바와 중첩하는 부분이 많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던 당대가 지금 같았을 리 없다. 민족의 역사를 통해 바라본 시대의 상과 이성은 마음 한쪽에 선명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상황을 상정하면서도, 어쩐지 그가 본 도시 골목길 풍경에서 지금 세기 타인의 일상을 본다. 사라진 것, 사라지는 것, 사라질 것, 그 모든 남과 남은 잔재의 마음을 오직 활자 안에만 존재하고 마는 고운 호수의 반영처럼 음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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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 Sang's Tokyo

Literature enters the public domain seventy years after the death of its author, when copyright expires. Not long ago, after a collected edition of Ri Sang’s works that I had left on a reading list disappeared once the loan period ended, I found myself looking into his world and his life before buying the full set. Bit by bit, whenever I had time, mostly between night and dawn, when spaces, minds, and distances alike seem to be holding their breath more than usual. Somehow. Wings, the difficult poems, the image of a genius who died young, the name that surfaced only briefly while studying for the college entrance exam. I wondered quietly whether anything might feel different now that I had lived far beyond the age at which he had already been fixed in place as a dead genius.

It sounds almost like a pun, but Ri Sang, who longed for Tokyo in the literal sense of the word, is said to have ended his life there in loneliness. Tokyo is a kind of mid-way recollection from a time when his feelings toward that city were still tangled and unresolved. In March 1939, Yi Sang published the essay in the literary magazine [Munjang], recording his impressions of Tokyo. He was neither a collaborator nor a willing servant of the empire, yet it seems clear that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he held a fairly large longing for the capital of the enemy nation. The text he left behind, moving from street to street with old acquaintances and newly met strangers, stirring through the city in daylight and at night, overlaps in strange ways with the feelings others have had in foreign cities from the 2000s into the 2020s.

Of course the turn from the nineteenth century into the twentieth could not have looked anything like the present. The image of that era, as seen through the history of a nation, remains clearly in one corner of the mind. And yet, even while holding all of that in view, I still find in the backstreets he saw traces of the ordinary lives of people in this century. What has disappeared, what is disappearing, what will disappear — all those remnants of feeling left between one person and another — I savor them as though they existed only in print, like the reflection of a beautiful lake that can never remain anywhere else.

동경 東京

작가 : 이상 Ri Sang

내가 생각하던 마루노우치 빌딩 ― 속칭 '마루비루' ― 은 적어도 이 '마루비루'의 네 갑절은 되는 굉장한 것이었다. 뉴욕 브로드웨이에 가서도 나는 똑같은 환멸을 당할는지 ― 어쨌든 '이 도시는 몹시 가솔린 내가 나는구나!'가 동경의 첫인상이었다.

우리 같이 폐가 칠칠치 못한 인간은 우선 이 도시에 살 자격이 없다. 입을 다물어도 벌려도 척 가솔린 내가 침투되어 버렸으니 무슨 음식이고 간에 얼마간의 가솔린 맛을 면할 수 없다. 그러면 동경 시민의 체취는 자동차와 비슷해 가리로다.

이 '마루노우치'라는 빌딩 동리에는 빌딩 외에 주민이 없다. 자동차가 구두 노릇을 한다. 도보하는 사람이라고는 세기말과 현대 자본주의를 비예 脾睨하는 거룩한 철학인, 그 외에는 하다못해 자동차라도 신고 드나든다.

그런데 내가 어림없이 이 동리를 5분 동안이나 걸었다. 그러면 나도 현명하게 '택시'를 잡아타는 수 밖에 ―

나는 택시 속에서 이십세기라는 제목을 연구했다. 창밖은 지금 궁성 宮城 호리 곁. 무수한 자동차가 영영 營營히 이십세기를 유지하느라고 야단들이다. 십구세기 쉬적지근한 내음새가 썩 많이 나는 내 도덕성은 어째서 저렇게 자동차가 많은가를 이해할 수 없으니까 결국은 대단히 점잖은 것이렷다.

신주쿠 新宿는 신주쿠다운 성격이 있다. 박빙을 밟는 듯한 사치 ― 우리는 프랑스 야시키 에서 미리 우유를 섞어 가져온 커피를 한잔 먹고 그리고 십 전씩을 치를 때 어쩐지 구 전 오 리보다 오 리가 더 많은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에루테루 ERUTERU' ―동경 시민은 불란서를 HURANSU라고 쓴다 ― 는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연애를 한 사람의 이름이라고 나는 기억하는데 '에루테루'는 조금도 슬프지 않다. 신주쿠 ― 귀화 鬼火 같은 이 번영 삼정목 三丁目 ― 저편에는 판장 板墻과 팔리지 않는 지대 地垈와 오줌 누지 말라는 게시가 있고 또 집들도 물론 있겠지요.

C군은 우선 졸려 죽겠다는 나를 치쿠지 築地 소극장으로 안내한다. 극장은 지금 놀고 있다. 가지가지 포스터를 붙인 이 일본 신극운동의 본거지가 내 눈에는 서투른 설계의 끽다점 같았다. 그러나 서푼짜리 영화는 놓치는 한이 있어도 이 소극장만은 때때로 참관하였으니 나도 연극 애호가 중으로는 고급이다. 인생보다는 '연극이 재미있다.'는 C군과 반대로 H군은 회의파다.

아파트의 H군의 방이 겨울에는 16원, 여름에는 14원, 춘추로 15원, 이렇게 산비둘기처럼 변하는 회계에 대하여 그는 회의와 조소가 크고 깊다. 나는 건망증이 좀 심하므로 그렇게 계절을 따라 재주를 부리지 않는 방을 원하였더니 시골사람으로 이렇게 먼 데를 혼자 찾아온 것을 보니 당신은 역시 재주가 많은 사람이라고 조추 양이 나를 위로한다. 나는 그의 코 왼편 언덕에 걸린 사마귀가 역시 당신의 행복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위로해 주고 나서 후지 산을 한번 똑똑히 보았으면 원이 없겠다고 부언해 두었다.

이튿날 아침 일곱시에 지진이 있었다. 나는 들창을 열고 흔들리는 대동경을 내어다보니까 빛이 노랗다. 그 저편 잘 개인 하늘 소꿉장난 과자같이 가련한 후지 산이 반백의 머리를 내어놓은 것을 보라고 조추 양이 나를 격려했다.

긴자 銀座는 한개 그냥 허영독본 虛榮讀本이다. 여기를 걷지 않으면 투표권을 잃어버리는 것 같다. 여자들이 새 구두를 사면 자동차를 타기 전에 먼저 긴자의 보도를 디디고 와야 한다.

낮의 긴자는 밤의 긴자를 위한 해골이기 때문에 적잖이 추하다. '살롱 하루' 굽이치는 네온사인을 구성하는 부지깽이 같은 철골들의 얼크러진 모양은 밤새고 난 여급의 퍼머넌트 웨이브처럼 남루하다. 그러나 경시청에서 '길바닥에 침을 뱉지 말라'고 광고판을 써 늘어놓았으므로 나는 침을 뱉을 수는 없다.

긴자 팔정목이 내 측량에 의하면 두 자가웃쯤 될는지! 왜? 적염난발 赤染亂髮의 모던 영양 令孃 한 분을 30분 동안에 두 번 반이나 만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영양은 지금 영양 하루 중의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 소화하시려 나오신 모양인데 나의 건조무미한 이 프롬나드는 일종 반추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교바시 京橋 곁 지하 공동변소에서 간단한 배설을 하면서 동경 갔다 왔다고 그렇게나 자랑을 하던 여러 친구들의 이름을 한번 암송해 보았다.

시와스 走師 ― 섣달 대목이란 뜻이리라. 긴자 거리 모퉁이 모퉁이의 구세군 사회 냄비가 보병총처럼 걸려 있다. 1전, 1전만 있으면 가스로 밥 한 냄비를 끓일 수 있다. 이렇게 귀중한 1전을 이 사회 냄비에 던질 수는 없다. 고맙다는 소리는 1전어치 와사만큼 우리 인생을 비익 裨益하지 않을 뿐 아니라 때로는 신선한 산책을 불쾌하게 하는 수도 있으니 보이와 걸이 자선 쪽박을 백안시하는 것도 또한 무도 無道가 아니리라. 묘령의 낭자 구세군, 얼굴에 여드름이 좀 난 것이 흠이지만 청춘다운 매력이 횡일 橫溢하니 '폐경기 이후에 입영 入營하여서도 그리 늦지는 않을걸요.' 하고 간곡히 그의 전향을 권설 勸說하고도 싶었다.

미츠코시 三越, 마츠자카야 松坂屋, 이토야 伊東屋, 시로키야 白木屋, 마츠야 松屋 이 7층 집들이 요새는 밤에 자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그 속에 들어가면 안 된다.

왜? 속은 칠층이 아니요 한 층인 데다가 산적한 상품과 무성한 숍걸 때문에 길을 잃어버리기 쉽다.

특가품 격안품 格安品 할인품 어느 것을 고를까. 그러나저러나 이 술어들은 자전에도 없다. 그러면 특가 격안 할인품보다도 더 싼 것은 없다. 과연 보석 등속 모피 등속에는 눅거리가 없으니 눅거리를 업수이 여기는 이 종류 고객의 심리를 이해하옵시는 중형 重形들의 슬로건 실로 약여 躍如하도다.

밤이 왔으니 관사 冠詞 없는 그냥 '긴자'가 출현이다. '코롬방'의 차, 기노쿠니야 紀伊國屋의 책은 여기 사람들의 교양이다. 그러나 더 점잖게 '브라질'에 들러서 스트레이트를 한잔 마신다. 차를 나르는 색시들이 모두 똑같이 단풍무늬 옷을 입었기 때문에 내 눈에는 좀 성병 性病 모형 같아서 안됐다. '브라질'에서는 석탄 대신 커피를 연료로 기차를 운전한다는데 나는 이렇게 진한 석탄을 암만 삼켜보아도 정열은 불붙어 오르지 않는다.

애드벌룬이 착륙한 뒤의 긴자 하늘에는 신의 사려에 의하여 별도 반짝이련만 이미 이 카인의 말예 末裔들은 별을 잊어버린 지도 오래다. 노아의 홍수보다도 독가스를 더 무서워하라고 교육받은 여기 시민들은 솔직하게도 산보 귀가의 길을 지하철로 함께 하기도 한다. 이태백 李太白이 놀던 달아! 너도 차라리 십구세기와 함께 운명하여 버렸었던들 작히나 좋았을까.

[문장], 1939. 05.